본문 바로가기

일에 대한 생각들

작은 변화가 쌓이면 삶이 바뀌니까

여름이다. 살면서 내가 쌓은 확실한 데이터가 있다면 8월 9일, 언니의 생일이 지나면 미친듯이 뜨겁던 여름이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바로 그 날이다. 이번 여름도 역시 뜨겁게 굴다가 갑자기 돌아서는 미친놈처럼 내일부터는 얼굴을 달리하고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서늘하게 굴 것이다. 

 

여름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올해 여름을 회고하고 싶다. 정확히 여름이 언제부터냐 묻는다면 내가 인스타그램을 지운 4월의 중순쯤이라 답할 것 같다. 시작은 내 마음에 자리잡은 고요한 피로감같은 것이었는데 그것은 마치 어느날 창문을 열었는데 분명 어제까지 울지 않았던 매미 소리가 들리고, '이제 진짜 여름이구나!'깨다는 것과 같은 신호탄이었다.

 

그렇게 내 핸드폰에서 인스타그램이 조용히 사라진 이후, 내 삶은 아주 고요하고 빠르게 바뀌어갔다. 오늘은 그해 그 여름 나에게 찾아온 변화에 대한 이야기. 

 


 

1. 새벽 기상

인스타 그램을 삭제할 때쯤 새끼 고양이 한마리를 집에 데려왔다. 이렇게 물렁하고 말캉한 존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보드라운 하얀 노르웨이 숲 고양이. 귀여운 외모에 비해 그 녀석의 생활 패턴은 사악했는데 우리가 일을 하는 오후 시간에는 내내 자고, 우리가 잠드는 밤 시간이 이 녀석의 활동 시간이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잠자리가 예민한 우리를 이 작고 말캉한 녀석이 새벽마다 깨워대는 바람에 나와 남편의 수면의 질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는 이런 결심을 하게 된다. '어차피 깰 거 그냥 빨리 일어나자' 그렇게 8시였던 우리의 기상 시간은 조금씩 당겨지기 시작했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엄청난 '아침 잠 사랑꾼'이고 평생을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자는 잠을 꼭 자야 하루가 개운하다고 말하고 다녔다.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한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잠이 깨지 않는 순간 두통이 찾아와 그만두고 말았다. 

 

하지만 이 작은 고양이의 매직 파워는 대단했다. 처음엔 7시30분, 그 다음 주에는 7시 15분, 또 그 다음 주에는 7시. 결국 우리는 자발적으로 4시 30분에 일어나 잠들어있는 고양이를 깨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나에게 실로 엄청난 충격과 동시에 성취감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거지?' 생각해 보니 새벽에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 새벽 4시 30분부터 약 9시까지의 시간을 나만의 속도로 산책하듯 보내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 가장 큰 차이였다. 새벽 기상은 여전히 도전 중이고, 지금의 도전 과제는 일어나서 샤워하고 책상에 앉기까지의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아직도 화장실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를 감금한 채로, '도대체 왜 이 시간에 일어나야하냐고' '그냥 자면 안되냐고' 묻는 시간이 너무 길거든!) 

 

2.모콘모 

이 모임의 시작은 김신지 작가님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책이었다. 책에서 작가님들이 친한 작가님 두 분과 모글모글이라는 온라인 콘텐츠 모임을 아침마다 하신다는데 너무 탐이 나는 거다. 자칭 '콘쟁이(콘텐츠 쟁이)'로서 늘 콘텐츠를 만들어야한다는 압박감만 가진채 몇 개월 동안 글 한 줄 안쓰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콘텐츠 하면 생각나는 사람, 나와 같이 가슴에 뜨거운 '창작'이라는 불덩이를 지니고 태어난, 마침 브런치에 매주 일요일 교환일기 형식의 글을 연재하고 있었던 키티언니를 찾아갔다. 그리고 '저랑 매일 아침 7시에 줌으로 만나서 글 쓰지 않을래요? 제 친구 중에 올해 책 내려고 글 쓰는 애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키티언니와 올해 책을 내는 그 친구 두부가 아침 7시, 구글 밋에 모이게 되었다. 이름은 모콘모(모닝 콘텐츠 모임), 내가 정했다. 아침에 글을 쓰는 모임인데 모글모글은 이미 김신지 작가님이 쓰고 계시니 아침 콘텐츠 모임이 딱이겠다 싶었다.

 

윤지님과 두부는 초면인 사이였지만, 마치 오래 전부터 만나 글을 써온 사람들처럼 서로를 신경쓰지 않았다. 글이라는 건 참 특이해서 저 사람도 나와 같이 글을 쓴다는 그 이유 하나가, 저 사람도 나와 같이 가슴 속에 활자로 태워져야만 하는 불덩이를 안고 산다는 그 사실 자체가 큰 동질감을 만드는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글'이라는 공통 분모 하나로 매일 아침 얼굴(그것도 심히 쌩얼인..)을 보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처음엔 한 달만 해보자고 했던 모임이 날이 뜨거워지도록 계속됐다. '오늘은 좀..' '비가와서 그런지..' '아침에 영어 미팅 때문에..'하면서 종종 얼굴을 못 보는 날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셋 다 I(내향형)라서 그런지 언제 한 번 밖에서 만나서 커피 마시자는 약속은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언젠가'에 부쳐있지만 뭐 어떤가 우리는 아침마다 만나서 각자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 걸. 껄껄.

 

3.명상

명상은 오랫동안 내 삶의 화두이자 잘 지내보고 싶은 무언가였는데 작년은 스픽의 회오리에 휩쓸리느라 오래도록 명상하는 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내 마음 속에 명상에 대한 강한 의지가 생겨났고, 올해 3월에 만난 싱잉볼이라는 세계는 내 명상의 여정을 더 깊이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숨쉬기에 머물러있던 명상이 더 깊은 내면으로 향하기 시작했달까. 그렇게 스님들이 발우공양할 때 쓰는 밥그릇같은 싱잉볼을 샌프란으로 ,하와이로, 곤지암으로, 무이림으로, 이고지고 다니며 명상 수련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스픽 친구들에게 싱잉볼의 울림을 경험하게 해주고, 명상을 함께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공감이었다.

 

여전히 갈 길이 멀고, 여전히 명상이 무엇인지 어렵지만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에 가장 가까운 감각이라는 걸 알기에 남은 올해는 내 시간과 에너지를 명상에 더 투자하고 싶다.

 

어느 날 책에서 '내 정신 건강을 위해 해야할 단 한 가지는?'이라는 질문을 만났는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명상'이 생각났다. 명상에 대해 더 공부하고, 내 삶 자체가 명상 수련의 연장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하와이에서 무이림같은 숙소를 만들고, 싱잉볼 세션과 묵언 산책을 하는 명상 리트릿을 진행할 때 지금의 이 수련들이 모여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모든 변화의 이야기는 여름이 시작되려고 하던 4 중순부터, 여름이 지나가려고 하는 8 9일까지의 이야기다. 가을이 시작되고 지나가는 자리에는 어떤 변화들이 쌓일까? 기대가 되기도 하고, 변화의 페이스를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부디! 올해 가을도 여름만큼 찬란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