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의 조건 3가지
'일'이라는 단어는 '자세'나 '태도'같은 단어처럼 '일'이라는 말만 들어도 자세가 고쳐 앉아지고, 어지럽던 마음이 겸허해진다. 얼마 전에 했던 전사 발표에서 내 꿈은 어떤 성공한 마케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잘러'가 되는 거라고 고백해버렸고, 정말 진심으로 '백수'가 되는 것 보다 '일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두렵고 끔찍하다.
지난 5년간 다노에서 일하면서 일잘러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크루들이 보여주었던 모습과, 내가 앞으로 커리어를 쌓아아감에 있어 잃지 않고 싶은 3가지 덕목을 정리해보았다. 물론 각자 일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일잘러의 덕목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나는 아래와 같은 덕목을 지닌 사람들과 일을 했을 때 가장 동기부여가 높았고, 성장에 불이 붙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명확한 커뮤니케이션
2.솔직하고 잦은 공유
3.can-do 애티튜드
1.명확한 커뮤니케이션
얼마 전에 본 MBTI 짤에서 내 유형(ISTJ)에게 가장 하지 말아야할 행동이 말을 흐지부지 끝내는 것이라고 해서 크게 공감했다. 더 웃겼던 것은 내가 그 짤을 옆자리 짝꿍인 수진님에게 보여줬을 때 '지안님은 그렇게 말을 흐지부지 끝내지 못하도록 한다'라고 말한 것이었다.
나의 그런 성격 때문인지 회의 시간이 끝나가도록, 정해진 내용이 없거나 어떤 액션을 누가/어떻게/언제까지 할지에 대한 논의가 오가지 않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럴 때 내가 자주 쓰는 단어가 '그러며는..' 이라는 말인데 이 말에는 잃어버린 회의의 방향을 되찾고 분위기를 환기 시키는 힘이 있어서 회의에 참여한 모두가 오늘 회의의 아젠다를 복기하고, 오늘 회의에서 정해져야할 이슈들이 정해졌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회의 주최자가 회의 전에 회의 아젠다를 미리 공유하는 것은 물론 회의 전에 읽고 와야할 문서를 전달하고, 회의에서는 정말 논의가 필요한 것에 대해서 공유하고, 회의 시간 내에 액션 플랜에 대한 DUE와 책임자가 정해졌을 때의 개운함은 나를 더욱 그 회의에 몰입하게 하고, 신나게 한다.
2.솔직하고 잦은 공유
기획자의 숙명은 기획자 혼자서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획을 하면 그것을 실물로 만들어줄 개발자 혹은 디자이너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는 반드시 커뮤니케이션이 따른다. 기획자의 머릿 속에 있는 기획과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갭을 줄이는 KEY는 결국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얼마나 싱크율을 끌어 올리느냐에 달려있다.
처음 다노샵 상세페이지를 기획하기 시작했을 때, 사실 나는 상품의 상세 페이지라곤 물건을 살 때 이것저것 둘러본 것 뿐이었다. 거기다 식품이라니.. 상세페이지는 '설득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상세 페이지'라는 이름에 압도당해 그동안 해왔던 컨텐츠처럼 상세페이지를 착착 그려나갈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상세 페이지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이유는 몇 개월간 제품 출시를 위해 아둥바둥한 MD, 상세페이지 기획에 따라 제품 촬영을 진행할 디자이너, 신제품 출시만을 기다려 온 매출 담당자, 상세페이지를 바탕으로 광고 소재를 기획할 생각에 바쁜 퍼포먼스 마케터까지 내 상세 페이지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무려 대여섯명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때 내가 택한 방법은 일단 공유하는 것이었다. 더 완벽한 기획안을 전달하기 위해 붙들고 있기 보다, 내가 생각한 상세페이지의 정의, 내가 바라본 제품의 마케팅 포인트와 설득을 위한 전략 등을 파워포인트가 아닌 엑셀 시트에 페이지 트리 형식으로 적고 '일단' 공유했다.
보통의 상세페이지 와이어프레임(기획안)라면 디자이너가 작업할 수 있도록 프레젠테이션에 인트로부터 아웃트로까지 모두 기획해서 전달하는 게 맞지만, 와이어 프레임을 그리기 전에 내 전략과 논리를 먼저 싱크 맞추고,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피드백을 받은 후에 와이어 프레임을 그리는 것이 리소스 측면에서나, 속도 면에서나 더 효율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엉성한 기획안이나 결과물을 공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나와 일을 여러번 해서, 나의 작업 스타일과 완성도에 대해 알고있는 사이라면 아무리 초안이라도 쉽게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다노샵 상세 페이지를 처음 맡게되었을 때처럼 나의 역량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자칫 일을 못 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하는 두려운 마음에 공유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내가 공유를 잦게, 미리미리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 안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기획자인 나도 아직 기획안에 대한 확신이 크지 않고, 애정이 생길만큼 많은 노력을 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가차 없는 피드백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피드백을 받다 보면 내가 내 아이디어에 빠져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도 챙길 수 있게 되어 기획안의 완성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었다.
3.CAN-DO 애티튜드
'캔두 애티튜드'라는 말은 내가 연봉 협상을 할 때 받게되는 피어 피드백에서 나를 평가한 크루가 나의 장점으로 뽑아준 단어였다. 이 단어를 듣기 전까지 '내가 어떤 태도로 일을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다가, 내가 그동안 옳다고 믿었던 태도가 'CAN-DO' 애티튜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습게도 나는 정말 모든 일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것은 방송 작가 시절, 정말 어떻게 이렇게 불가능한 것들만 시킬까 싶을 정도로 메인 작가님은 하루가 멀다하고 나에게 어려운 섭외만 요청했다. '아궁이를 쓰면서 한식을 연구하는 할머니'라던가, '캘리포니아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반대하는 일본의 극우세력'이라던가, '아 그런 사람을 메인 작가님이 알고 계신가 보다'라고 생각해서 연락처를 물으면 그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찾는 것이 내 일이고, 있다면 그 사람을 방송국 카메라 앞에 앉혀 놓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는 답변을 해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지? 싶을만큼 비현실적인 일들을 해냈다. 위에 언급한 '아궁이를 쓰면서 한식을 연구하는 할머니'도 '캘리포니아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반대하는 일본의 극우세력'도 결국 방송국 카메라 앞에 앉게 되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나는 어느 정도 '못 하는 게 아니라, 절실하지 않은 것'이라는 꼰대의 마음을 갖게 되었고, 지금도 절실하면 모든 것은 어떻게든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다노에서도 방송 작가때 만큼은 아니지만, '정말로 이게 가능할까?'싶은 챌린지들이 온다. 어떨 때는 리소스가 없어서, 어떨 때는 내 능력이 부족해서 아득한 일 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 앞에는 '이걸 가능하게 하고 싶다'라는 눈빛을 간절히 보내는 크루들이 있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할 수 있어' 라는 말이 나오곤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내뱉고,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힘 나게 한다.
반대로, 내가 가장 의지를 상실할 때는 '할 수 없다'는 마인드가 팽배할 때인 것 같다. 모두가 할 수 있다고 믿어도 될까말까한 상황에서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우리 앞을 가로 막은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할 수 없다'는 믿음을 전파하는 모습을 보면 무릎에 힘이 탁 풀리고 만다. 적어도 기적은 믿는 자에게 있다. 설령 그 일이 실패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먼 훗 날 지금의 나를 돌아봤을 때 불가능한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으면서 똑똑한 체하는 모습보다, 할 수 있다고 패기있게 덤비다가 해봤는데 안되네..라고 머쓱하게 돌아가 다시 또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모습이 내 젊은 날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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