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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생각들

인생 첫 이직 그로스마케터 이직 풀 스토리 #2

'이직'이 어땠냐 라고 물어본다면, 다시 그 경험을 하고 싶지 않을만큼 마음이 힘들었다고 답할 것 같다. 그냥 지나가는 직장인만 봐도 '저 사람도 이 시기를 거쳐서 이직에 성공한 거겠지? 대단하다' 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에겐 이직이 마치 소개팅에서 첫 만남에 눈이 맞아 다음 달에 바로 결혼까지 골인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이 어려운 와중에도 내 마음에는 '이 시기에 내가 경험해야할 것이 분명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스터디 카페에 100시간을 등록해두고 글도 쓰고 면접 준비도 하고 그랬는데 내가 스터디카페에 등록한 이 100시간이 내 인생을 분명 바꿔줄 거라는 강한 직관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그 시간 동안 내가 해야할 일이 있으면 꼼수 부리지 않고 했고, 내가 겪어야할 감정들(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거나)이 있다면 그냥 허헣헣 하면서 겪어냈다.

 

그렇게 이직 1차전이 끝나고 잠시 휴식기 1주일 정도를 가진 뒤 10월부터 다시 2차전을 준비했다. 1차 때 만들었던 자소서와 경력 기술서 내용을 면접 과정에서 반응이 좋았던 이야기들 위주로 솎아내고 다듬었다. 1차와 2차의 가장 큰 차이는 원티드의 '필터 기준'이었는데 이 전에는 큰 기업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구성원 수 100명 이상을 기본 필터로 걸고 있었다. 하지만 6번의 면접을 통해 나는 이미 프로세스가 잘 잡힌 곳보다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하는 곳에서 더 빛나는 사람이며, 세분화된 업무보다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단계의 스타트업이 더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과감히 구성원 수에 대한 필터를 없애고, '그로스 마케터' 직무 필터를 추가했다.

 

사실 1차전에 비해 2차전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면서 마음의 부침이나 고생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새로운 필터를 적용하자마자 스픽을 만났기 때문인데, 아직도 그 날 아침의 공기와 온도 습도까지 모두 기억날 정도로 스픽의 첫 인상은 너무 강렬했다. 스픽 앱의 첫 경험이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도 있지만, '실리콘 밸리에서 만든 AI 기반 앱'이라는 점, 대표는 '하버드를 중도 포기한 천재 개발자' 그리고 틴더 창업자, Y컴비네이터, 코슬라벤처, 파운더스펀드 등 실리콘밸리에서 큰 손으로 여겨지는 투자자들로 투자자 리스트가 너무 좋았다. 투자자가 이 정도면 적어도 망하진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JD(Job Describtion)이었다. 이직을 하는 동안 애매모호한 JD에 빡친 적이 한 두번이 아닌데 스픽의 JD는 해석하려는 노력 없이 한 숨에 읽혔다. 내가 면접마다 외치고 다녔던 '컨텐츠 마케터 ,브랜드 마케터 영역과 역할을 나누는 것에서 의미를 찾기보다 각 퍼널에서 각 마케팅이 일관된 메시지로, 가장 큰 시너지를 내게 하는 것이 마케팅의 전략이자 방향성'이라는 마케팅 비전을 그대로 JD로 옮겨놓은 듯 했다. 더군다나 이 JD가 그로스마케터(UA) JD라니.. '스픽 이 자식들 뭘 좀 아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두근 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해서도 계속 JD가 남긴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스픽  기사도 찾아보고 태용에 나온 대표님 인터뷰도 찾아봤다. 그리고 저녁에는 동거인과 산책을 하면서 스픽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실리콘 밸리에 본사가 있고, 한국 영어 시장의 특수성, 수능 만점을 맞아도 스피킹은 두려워하는 한국인 특을 잘 살려 머나먼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에 첫 진출한 이야기등을 했다.

 

동거인은 어두운 밤 길에서도 두 눈을 반짝이며 너무 재밌는 친구들이라며, 내가 그 회사에 꼭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어를 해야하지 않을까, 그래도 큰 회사에 가는 게 내 이직의 목적이었는데..'라며 내 걱정을 털어 놓았지만 동거인에게는 '너에겐 그런 도전적인 곳이 어울려'라는 말이 돌아왔고, 나도 '맞아, 사실 그게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어'라 답했다. 내 이직 기간 내낸 함께 고민하고 내 스트레스를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감내해야 했던 동거인이 그렇게 좋아하니 나도 덩달아 신이났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한 번 이력서를 점검하고 스픽 그로스마케터(UA)에 지원했다. 내 이력서 중간에  그로스마케터 처럼 일한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볼드 처리로 강조할까 했지만, 관뒀다. 그냥 내가 JD를 보고 스픽을 알아봤듯 스픽도 나를 알아볼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날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 쯔음 핸드폰을 봤더니 '서류에 통과하신 것을 축하한다'는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가능한 빨리 화상 챗을 통해 면접 전 서로의 경험과 기대치를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메일에서 어쩐지 나를 빨리 만나보고 싶어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아 여길 오려고 내가 그동안 그 노력을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