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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웨이브 다이어리

남의 돈을 쓴다는 것, 번다는 것

 

남의 돈을 쓴다는 것, 번다는 것

열한 번째 | 연말 스픽에서 살아남기

 

 

12월 마지막 주가 되자 늘어나는 예산에 압도되어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 구독 서비스의 경우 무료체험 기간을 고려하면 12월 마지막 주에 투자하는 마케팅 비용은 한 주 뒤엔 1월에 회수하게 된다. 이 말은 12월 마지막 주에는 그 효율의 운명을 새해의 신에게 맡긴 채 평소 대비 n배의 예산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지난 7년간 컨텐츠 에디터부터 브랜드 마케터, 커머스 마케터 등등 다양한 직무를 거쳤지만 그 중에서도 퍼포먼스 마케터만큼 애달픈 직무도 없는 것 같다. 퍼포먼스 마케팅이라 함은 'Paid' 매체를 운영하며 광고비 대비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일일텐데 말 그대로 회사의 피같은 돈을 써서 황금같은 돈을 몇 배는 벌어와야 하는 일인 것이다. 

 

처음 퍼포먼스 마케팅을 할 때에는 돈을 쓴다는 것 자체가 신이 났다. 

돈을 쓰면 사람들이 내 컨텐츠를 좋든 싫든 본다는 게 신기했고, 내가 원하는 타겟에게 내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 액수가 점점 늘어나고, 관리하는 매체가 늘어나다 보니 돈을 쓰고 더 큰 돈을 벌어온다는 것 뒤에 자리 잡은 엄청난 부담감과 책임감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특히 상위 책임자들은 돈을 썼으니 돈을 벌어와야지 라고 생각한다.(그것도 백번 맞다) 하지만 광고라는 것은 참 이상해서 A매체의 효율을 B 매체가 레버리지 하기도 하고, 어제 잘됐던 캠페인이 오늘은 죽을 쑤기도 한다.

 

결국 그 성과의 오르내림, 머신 러닝의 최적화의 정도에 따라 우리 애달픈 퍼포먼스 마케터들은 대시보드를 들락거리며 기뻐했다가 좌절했다가 의심했다가 희망을 품었다가를 반복한다. 어제는 1차때 '미쳤다'라고 할만큼 잘 되었던 프로모션 캠페인이 2차가 시작되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1차 때는 연초에 더 가까워진 2차 프로모션을 노리고 예산 상향을 공격적으로 하지 않았던 터였다. 1차때의 성과를 믿고 2차 프로모션이 당연히 더 잘될 거라는 생각을 가진 내 안일함이 잘못이었다. 이미 2차 프로모션을 위한 광고비 중 하루 분량(이마저도 꽤 컸다)이 소진된 후였고, 나는 정신줄을 붙잡아야 했다. 

 

회사 바로 앞에 있는 선릉과 정릉 티켓을 끊고 들어가 다리가 아플 때까지 걸었다. 

처음엔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내가 어떤 액션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산책이었는데 그 생각은 점차 '내가 어쩌다 이번 생에 마케터가 되었는가' '남의 돈을 쓰고 남의 돈을 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등 다양한 원망과 생각들로 번져나갔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런 고충을 털어놓을 때마다 종종 '남의 돈인데 뭐 어때, 너 돈도 아니잖아'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안일한 생각이 나를 좀 먹고, 결국엔 내 일에 대한 태도와 존엄성을 해칠 거라고 믿는 것 같다. 내 돈이 아니기에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머니를 단단히 단속해야한다.

 

그것이 2 만리 떨어진 미국 땅에서 코너가 돈을 권한과 책임을 이유이고, 나는 부담스럽고도 괴롭고, 도망치고 싶고, 매일 예산을 조정할 때마다 손이 덜덜 떨리는 과제를 너무나 잘해내고 싶다. 적어도 광고비를 많이 집행해본 마케터가 아니라, 어떤 예산의 규모든 남의 귀한 알고 10 장이라도 알뜰히 살뜰히 마케터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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